나의 신앙일지
권혁만
あらすじ
내가 언급하는 바른 신앙에 대한 나의 견해가 내용적으로는 미흡하지만 나와 같은 일반적인 교인들에게는 현실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준 목사님과 신학자 소개하고자 한다. 옛말에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 주변의 친구를 보면 보라’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과 신학자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즐겨 듣는 유튜브 방송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 만으로도 내 신앙관의 윤곽은 보다 분명해 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목사님 두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분 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고 책과 설교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과연 올바른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던 중에 목사님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 (중략) 두 목사님의 설교는 삶이란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해석법인데 그 동안 개신교는 문학과 문화보다는 조직신학적 접근법을 사용했다. 특히 종교개혁은 근대정신의 투철한 병사로서 이성과 논리를 추구하는 해석법을 물려주었다. 이후에 일어난 운동들이 대체로 교리화, 조직신학화 되는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그것이 나쁘기보다 시대적 요청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근대의 쇠퇴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성경을 다시 보도록 촉구한다. 실존주의와 과정 신학 등은 해체주의와 현상학이란 철학 사조들과 맞물리면서 이성이 아닌 삶으로 성경을 보게 한다. 즉 성경이 쓰인 정황, 과정, 삶의 맥락을 살피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철학,역사,문학 등)을 모르고는 제대로 된 ‘기독교’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어설프게 알던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인문학에서 바라 본 기독교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해주었고 이 때 두 분의 신학자를 책과 동영상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중략) 마지막으로 즐겨 듣는 유튜브 방송을 소개하면, 신앙터치와 예도tv이다. 신앙터치를 통해서 나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지금까지 방송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다른 시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시간을 내서 이 분들과 인터넷을 통해 만나보기를 권한다. 끝으로 내가 주장하는 바른 신앙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앙은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고 그 또한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른 신앙 생활을 고민하는 나와 같은 교인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4-4.톨스토이 '부활'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속에서 본 복음 주목할 점은 마슬로바의 변화는 네흘류도프의 헌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부활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말로만 타이르고 계도하기 쉽다. 하지만 네흘류도프의 모습을 통해서 타인의 부활은 자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촉발되어짐을 알 수 있다. 호세아가 노예시장에서 찾은 고멜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히브리어 ‘호세아’는 헬라어로 ‘예수’이다. 그리고 타락한 고멜은 우리들이다. 인간이 고통 받는 그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죄인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한다든지 교화할 능력을 부여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