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는 비유를 통해 이 책에 모인 글들이 집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비교, 혹은 최소한 비대칭적 비교이다. 이 책은 고아라는 주제에 담긴 표면적인 공통성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다름’이 어떻게 고아라는 비유 안에서 다양한 층위로 쌓이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이디푸스와 프랑켄슈타인은 특정한 의미망 안에서만 고아이지만, 고아라는 명사의 유적(類的) 특성은 이들의 다름을 보여주기보다는 은폐한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고아 의식과 그 몇 세대 후 이광수의 의식 세계에 자리한 뿌리 깊은 고아 의식은 같은 용어로 표현되는 ‘다름’의 전형적인 예이다. 더구나 공통성에 기반을 둔 비교는 결국 위계를 확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선 전기의 ‘고아’ 정책이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 ‘고아’ 정책보다 선진적이거나 후진적이었다는 언명은 공통성의 비교가 지닌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병치되어 배열되어 있다고 해서, 식민지 조선의 사생아와 미국의 일본인 수용소 수감자들을, 혹은 프랑켄슈타인과 19세기 파리의 고아들을 ‘비교’하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보아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각각의 고아는 그들을 만들어내는 세계의 다름을 표출한다. 이 다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공통성의 비교가 결국 특정한 형태의 세계의 이해―아마도 우리가 근대성이라고 명명하는 무엇―의 반복일 뿐이라는 저자들 공통의 인식 때문이다.